① M2 — 돈이 돌고 있는가, 멈춰 있는가
경제에서 ‘돈의 양’을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 지표가 M2다.
M2는 현금, 요구불예금, 정기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포함한 광의통화(廣義通貨) 개념으로, 중앙은행이 실제로 공급한 자금이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으로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M2의 단순한 증가가 언제나 ‘좋은 유동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팬데믹 당시 미국의 M2는 사상 최대 수준인 26조 달러를 돌파했지만, 그 돈의 상당수는 소비나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금융시스템 내부에 쌓였다.
이것은 ‘정체된 유동성(stagnant liquidity)’이다. 돈이 돌지 않으면, M2의 증가도 경기에는 별다른 활력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M2가 감소하는 시점에는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다.
2022~2023년 미국의 M2는 60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고, 이는 주식·부동산·채권 등 자산 전반의 조정과 궤를 같이했다.
즉, M2는 돈의 절대량보다 ‘변화율’이 중요하다.
유동성의 사이클은 언제나 숫자가 아니라, 방향에서 시작된다.
② RP — 금융시스템의 실시간 혈류
RP(Repo, 환매조건부채권)는 자금시장의 심박수를 측정하는 장치와 같다.
RP시장은 은행, 증권사, 기관이 단기자금을 빌리고 빌려주는 초단기 채권거래 시장이다.
쉽게 말해, ‘오늘 돈을 빌려주고 내일 채권과 함께 돌려받는 거래’다.
이 시장의 금리는 자금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즉각 반영하기 때문에, 단기 유동성의 긴장도를 가장 빨리 보여준다.
예를 들어 RP금리가 급등하면, 이는 시장이 ‘단기자금이 부족하다’는 신호다.
2019년 9월 미국에서 RP금리가 하루 만에 10%까지 치솟았을 때, 연준은 즉시 750억 달러의 긴급 유동성을 투입했다.
그 사건은 QT가 조기 종료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RP금리가 일정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은행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즉, RP시장은 유동성의 미세혈관이다.
돈이 원활하게 돌고 있는지, 막혀 있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지표가 바로 RP금리다.
투자자가 시장의 온도를 읽으려면 주식지수보다 먼저 RP시장을 봐야 한다.
③ 역레포 — 중앙은행의 밸브 역할
역레포(Reverse Repo)는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의 초과유동성을 흡수하는 창구다.
즉, 은행과 MMF들이 단기자금을 연준에 맡기고, 대신 담보로 국채를 받는 구조다.
2021~2023년 사이 미국 역레포 잔액은 최대 2조 5천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이는 곧 ‘시중에 돈이 넘쳐나는데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중앙은행에 묶여 있다’는 뜻이었다.
이 잔액이 유지되는 동안 주식과 채권시장 모두 활력이 떨어졌고, 이는 QT(양적긴축)의 압박 효과를 더욱 강화했다.
하지만 2024년 중반부터 역레포 잔고가 빠르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는 초과유동성이 민간시장으로 되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역레포 잔고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시장 자금이 얼어붙어 있는가, 흐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밸브다.
역레포가 줄면 시중 단기금리가 내려가고, 이는 곧 기업 자금조달 환경이 개선된다는 뜻이다.
결국 역레포의 감소는 연준의 완화적 전환보다 먼저 나타나는 ‘선행적 유동성 시그널’이다.
④ 세 지표의 조합 — 자금 순환의 지도
M2·RP·역레포는 각각 다른 영역을 설명하지만, 세 지표를 함께 보면 유동성의 큰 지도를 읽을 수 있다.
먼저 M2의 변화율이 상승세로 전환되면, 시중의 총유동성이 확장 국면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때 RP금리가 안정세를 보이면 단기자금 시장의 긴장도가 완화되고, 역레포 잔고가 감소하기 시작하면 초과자금이 투자시장으로 이동하는 단계다.
즉, M2 상승 → RP 안정 → 역레포 감소의 흐름이 동시에 나타날 때, 시장은 본격적인 유동성 회복 국면에 진입한다.
이 조합은 주가의 방향성보다 훨씬 앞서 움직이는 선행 신호다.
실제로 과거 사례를 보면, M2 증가율이 바닥을 찍은 뒤 약 3개월 후 주식시장은 상승 전환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대로 RP금리와 역레포 잔고가 동시에 오를 때는, 시장의 긴축 압력이 커지고 단기 조정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지표들은 중앙은행의 발언보다 솔직하다.
정책은 말로 포장될 수 있지만, 돈의 흐름은 숨길 수 없다.
M2가 늘고 RP금리가 안정되며 역레포가 줄어드는 구간, 그것이 바로 ‘유동성의 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이때 투자자는 금리보다 신용, 지표보다 심리를 봐야 한다.
돈이 다시 돌기 시작하는 시점은 언제나 숫자가 아니라 ‘기대의 온도’에서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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