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끝나지 않은 일본의 낮은 금리 실험
일본의 엔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다.
그건 30년 넘게 이어진 초저금리 정책의 누적된 산물이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버티기 위해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며 경기 부양을 시도했다.
하지만 디플레이션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 일본 경제에서는
아무리 돈을 풀어도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은행은 제로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로 진입했고,
그 결과 엔화는 구조적으로 약해졌다.
금리가 낮으면 외국 자본은 이탈하고,
해외 자산에 투자하려는 일본 자금이 더 많아진다.
이 자본의 방향 전환이 바로 ‘엔저의 근원’이다.
② 금리 차가 만들어낸 환율의 경사
미국이 금리를 5% 이상으로 유지하고,
일본이 여전히 0% 근처에 머물러 있다면
그 차이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구조적 수익 기회가 된다.
투자자들은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를 활용한다.
이 거래가 늘어날수록 엔화는 지속적으로 매도되고,
달러는 강세를 보인다.
결국 엔저는 일본 내부의 경제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 흐름의 결과이기도 하다.
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경제 체력이 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가가 조금 오를 때마다 일본은행이 망설이는 건
한 번의 금리 인상이 경기 전체를 멈출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③ 엔저의 이면, 수출국의 양날의 검
엔저는 일본 기업에게 단기적으로는 호재다.
수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해외 매출이 늘어난다.
도요타, 소니, 미쓰비시 같은 대기업들은
엔저 덕분에 분기 실적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효과는 일시적이다.
원자재 수입비용이 늘어나면서
내수 산업은 가격 압박을 받는다.
또, 지나친 엔저는 국민의 실질소득을 떨어뜨리고
소비심리를 위축시킨다.
결국 일본 경제는 수출 호조와 내수 침체라는
양극화된 성장 구조에 갇히게 된다.
엔저는 외형적 성장의 숫자를 만들어내지만,
내부의 체온을 낮춘다.
④ 아시아 금융질서의 균열
엔저는 일본의 문제를 넘어서
아시아 전체 자금 흐름에도 파장을 미친다.
엔화가 약해질수록 일본 자본은
동남아시아나 신흥국으로 유입된다.
하지만 그 유입은 불안정하다.
엔화 가치가 다시 오를 조짐만 보여도
자금은 급속히 회수된다.
이런 불안정한 자본 흐름은
아시아 금융시장의 구조적 리스크가 된다.
또한, 엔저는 위안화의 상대적 강세를 부각시키며
중국이 금융허브로 부상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준다.
즉, 엔저는 단순한 일본의 통화 현상이 아니라,
아시아 금융질서의 재편을 촉발하는 촉매제다.
⑤ 엔저 시대의 끝은 언제 오는가
결국 엔저의 종말은 일본은행의 결단에 달려 있다.
금리를 올리지 않는 한,
엔화는 구조적으로 약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는 순간,
부채 부담이 폭발할 수 있다.
이 딜레마 속에서 일본은 ‘저금리의 덫’에 갇혀 있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는 것은
단순한 정책 전환이 아니라
경제 체질의 변화를 의미한다.
생산성 향상, 내수 회복, 인플레이션 정착 —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지기 전까지
엔저는 끝나지 않는다.
결국 일본의 금리는 숫자가 아니라,
시대의 기억이다.
그 기억이 바뀌어야
엔화의 운명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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